돌아가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일화다용인에 위치한 그룹 연수원은 현대그룹 가족 휴양지이기도 했다휴양지에는 동물원에 있을법한 커다란 조류장과 목장 등이 있었다. 45만평에 대한 총괄관리책임을 연수원장이 맡고 있었기에 정 회장이 휴양지에 들르면 원장은 부리나케 수행을 해야 했다정 회장은 늘 현장을 직접 관찰하며 이것저것 물었다.

어떤 걸 물을지 모르기에 항상 긴장했다엘크와 꽃사슴을 비롯해 공작새오리호로조 등이 몇 마리씩 있는지 늘 외우고 다녔다.어느 날 정 회장은 목장을 향해 가면서 원장에게 젖소가 몇 마리 있나?”하고 물었다원장은 스무 네 마리 있습니다하고 얼른 대답했다정 회장은 그럼 암소는 몇 마리야?” 하고 다시 물었다원장은 암수 구분해서 암기하지 않았기에 그 질문에 당황해 하면서 짐작으로 열 두 마리입니다고 대답했다정 회장은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젖소가 전부 암소지 숫소가 어디 있어?!”  현장 파악의 꼼꼼함을 요구하여 정 회장이 던진 질문이라 짐작해본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늘 질문을 했다질문을 통해 안다의 범주를 깨닫게 했다질문을 던져 모르는 것이 무언지 일깨워줌으로써 스스로 지식을 채워 넣도록 했다그리하여 이른바 너 자신을 알라!’고 설파했다연수원장이 질문을 접하자 비로소 얼마만큼 아는지무엇을 모르는지를 깨닫게 된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동양에서는 지식을 얻는 방법으로 가르친다(teaching)’는 개념을 사용했다지식을 갖춘 선생이 가르친다는 방식이다하지만 서구에서는 끄집어낸다(ex+duce=education)’ 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원래 완벽한 지식을 지닌 생명의 혼이 몸을 빌어 태어나기 직전 망각(레테)의 강물을 마시는 바람에 모두 잊었다 한다따라서 잊었던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질문이라는 거다코칭도 고객의 잠재된 능력을 끄집어낸다.

마치 마중물과 같다소크라테스의 엄마는 산파였고아버지가 석공이었다고 전해진다이웃집에 어제까지 없던 아이가 생긴 것을 이상하게 여겨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하면 엄마는 그 아줌마 뱃속에 원래 아이가 있었는데 엄마가 꺼내어 아이가 나온 거야하고 답을 해주었다저번 때까지 없었던 돌 사자상이 나타난 걸 보고 묻자 그의 아버지는 원래 돌 속에 사자가 들어 있던 것을 아빠가 도와주어 끄집어 낸 것이란다” 하고 답을 해주었다고 한다뭔가 꺼내어 돕는다는 개념은 코칭의 기본 철학이다.

지식을 끄집어낸다는 개념 안에는 인간존재의 완전함을 받아들인다인간중심의 사고다그래서 좋다사람을 부족한 존재로 인식하고 채워나간다고 보는 동양의 접근과는 다르다필자가 코칭의 매력에 크게 빠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부족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면 굳이 고객에게 질문할 필요가 어디 있으랴코칭은 아름다운 동행이다.

이 글을 공유하기

다른 게시글

한계를 돌파하도록 돕는 코칭

어느 날 염구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선생님의 가르침이 싫어서가 아니라 제가 실행하기에 역부족(力不足)인가 봅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듣자 공자가 한 마디 합니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해보다가

행동을 문제 삼지 않는 코칭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행동에 잘못이 있을까 없을까?” 하며 의도된 질문을 해보면 대다수는 ‘행동에 잘못이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그만큼 반전을 일으키는 질문입니다. 행동에

<미스 트롯 2>와 감동스토리

저는 대학 교양수업에서 자기 스토리, 그 중에서도 자기를 사랑할만한 스토리를 말하도록 기회를주고 있고, 대학원 철학수업에서도 이론 자체보다 학습주체자인 자기이야기를 더 많이 하도록 합니다. TV조선의 미스트롯2는

당신에게 행복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내게 행복을 전해주는 주체는 ‘나’입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내 안에 있고 나 스스로 꺼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다가와도 내가 인식하지 못하면 행복감에 머물지 못할 겁니다.

커리어 코칭 모델

​ 커리어 코칭 모델은 주요 요소뿐 아니라 코칭 전개의 프로세스 와도 밀접한 연결성을 보여준다. 1. Love myself.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분석 2. Love

세종의 독서코칭 -오정근코치

​ 세종 초기에 당시 어전회의 분위기는 오늘날 많은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세종은 신하들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아 속마음 알기도 어려웠고, 누군가 의견을 개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