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과 철학

코치다움과 코칭다움

나는 코치다운가? 이런 질문을 해보며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는 코치라는 모자를 썼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을 때입니다. 코칭을 하러 기업에 가면 사람들이 제게 코치라는 명칭보다 교수로 부르는 편입니다. 소속 구성원이나 자기 비서들도 저를 그렇게 부르는 걸 보면 ‘리더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코칭 받는다는 것을 제 3자가 아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러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코치라는 직업이 신뢰받고 존경 받을만한 위치로 자리매김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코칭에서 무엇이 좀더 달라져야 할까? 하며 저를 들여다봅니다. ​ 코칭고객이 자신이 변화된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최근에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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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에서 존재와 존재감

제가 존경하는 코치선배님의 특강을 들으며 코치다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바를 적어봅니다. 그 분은 “코치로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자기 물음에 「청소부 밥」에 나오는 문구를 소개합니다. “쏜 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을 영원히 잡아두는 방법은 내가 깨달은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밖에 없다” 고 하며, 살면서 세상에서 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고 회상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무언가 남기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합니다. 이미 그렇게 충분히 살아오신 분이어서 공감이 갔습니다. 아울러 저 유명한 노래가사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를 통해 코치의 미션 – 고객의 손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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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호찰의 지혜

고객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정답을 제공하는 컨설팅과 달리 코칭은 코치의 질문에 의해 코칭고객 스스로 최적의 답을 찾아내어 실천하도록 돕는 지혜를 다루는 대화과정입니다. 학문이라는 단어는 원래 배우고(학-學) 묻는다(문-問)는 글자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을 이른바 철학이라고 하며 동서양에서 각기 공자(BC 551~479)와 소크라테스(BC 469~399)를 시조로 꼽습니다. 두 사상가가 출현한 시기를 보면 동서양의 철학사상의 출발시기는 거의 비슷했으며, 사상가가 살던 배경은 전쟁이 심하던 시기였습니다. ​ 지혜를 탐구하는 방법으로 동서양에서 공통으로 사용된 것은 질문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 는 산파술이라 하여 자신이 직접 상대방에게 질문을 통해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공자나 맹자인 경우 제자나 왕이 궁금한 것이나 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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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행복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내게 행복을 전해주는 주체는 ‘나’입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내 안에 있고 나 스스로 꺼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다가와도 내가 인식하지 못하면 행복감에 머물지 못할 겁니다. 따라서 행복을 주는 대상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내게 행복을 전해주는 존재’라고요. 그래서 그런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감사합니다’ 입니다. 경(敬, 고마경 =고마울 경)을 붙잡고 경 안에서 지내면 늘 행복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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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몸을 사용하도록 돕는 코치

# 팀장 : 코치님! 제가 어떨 때는 리더답게 행동하다가도, 어떨 때는 영 그렇지 못한 데 그 이유가 뭘까요? 코치 : 좋은 질문이네요. 그 질문을 들으니 맹자가 떠오르네요. 맹자 이야기를 잠깐 말씀 드려도 될까요? ​ 맹자가 제자에게 “어떤 사람은 대인 같고, 어떤 사람은 소인 같은 이유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큰 몸(大體: 대체)을 따르는 사람은 대인(大人)이라 하고 작은 몸을 따르는 사람은 소인(小人)일세.” 제자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합니다. 맹자는 “귀나 눈 같은 감각기관은 생각하지 않으니, 외물(外物)에 어두워 끌려 다니기가 쉽다네. 그러나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思)하는 것이어서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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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존재로 인식하는 코칭

# “코치님, 저는 문제가 많은 사람인가 봐요?” “무슨 말씀이세요?” “구성원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화가 나고 화 내고 나면 후회스러우면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니 감정 조절하지 못하는 내가 참 한심하네요.” 기업체에서 임원이나 팀장코칭을 하면서 가끔씩 듣게 되는 말입니다. “그것도 상무님이 완전한 존재라는 증거 아닌가요?” 이렇게 말하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아리송하게 생각합니다. ​ 우리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감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내가 배고픔을 느낀다면,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서 배가 고픈 걸까요 아니면 존재로서 완전하기에 배 고픔을 알아차리는 걸까요? 배고파 하는 것이 불완전해 보이지만, 만일 내가 계속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는 영양실조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존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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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에서 다루는 것은 본(本)

# 리더 : “코치님, 구성원이 저를 잘 따르지 않는데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코치 : “그 문제가 해결되면 팀장님에게 무엇이 좋아지나요?” 리더 : “불편한 감정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코치 : 불편한 감정이 사라지면 무엇이 좋아지나요?” 리더 : “미워하지 않고 편하게 대해줄 수 있겠습니다” 코치 : “편하게 대하면 무엇이 좋아지나요?” 리더 : “조직성과도 잘 이루어지고, 관계도 좋아집니다” 코치 : “성과와 관계도 좋아지면 무엇이 더 좋아지나요?” “리더 : 모두 함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 “그렇게 하면 무엇이 좋아지나요?” 이와 같은 질문을 몇 차례 반복하면 최종적으로 “나답게 살게 된다” 혹은 “모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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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 세상>을 읽고

전헌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종래와는 전혀 다른 류의 인식변화를 얻게 된다. 경험과학이나 해석학, 행동철학의 한계를 꼬집으며 그 동안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감정의 영역을 깊게 다룬 감정학이라는 또 다른 문이 열리는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은 핵심 내용은 첫째, 나는 완전한 존재다. 둘째, 몸이 감정이며, 감정이 이성이고 이성이 감정이다. 셋째, 우리가 시는 세상은 다 좋은 세상이다. 이른바 철학에서 주로 다루는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건진 알짜배기 문구들을 모아보았다. 우리 몸이 아는 걸 우리가 정(精)이라고 한다. 싫다는 건 나쁜 게 있다는 말이 아니라 공부할 때가 됐다고 알려주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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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 다 좋은 세상은 평천하를 이루는 세상이다. 내 감정이 평안해지면 그것이 곧 평천하다. 내가 변하면 세상은 이미 변한 것이다. – 다 좋은 세상은 너와 내가 소중한 세상이다. 하나라도 없으면 우주에 빈공간이 생긴다. – 다 좋은 세상은 존재와 시간이 영원무한하다.   – 다 좋은 세상은 내 감정이 알게 해준다. 감정은 센서와 같고 내 존재를 알게하는 신호다. 나쁜 감정이란 없다.  – 다 좋은 세상은 감정이 올라오면 자신이나 타인에게 물어보고 알아서 기분좋게 사는 세상이다. – 다 좋은 세상은 행동에는 잘못이 없다. 잘못 알아서 행동이 일어난 것이니 생각만 챙기면 된다.    내가 상대에 대해 뭘 모르지? 상대가 뭘 모르지? 그걸 챙기는 세상이다. – 다 좋은 세상은 누구나 대인이고 군자며 성인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그렇게 대한다. – 다 좋은 세상은 배우고 알아가는 삶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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