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은악이양선

순임금은 은악이양선(隱惡而揚善)하는 사람입니다. 나쁜 것은 감추고 선한 것을 드러내는 분입니다. 예컨대 빅토르 위고의 명저인 『레비제라블』에서 성당의 물건을 훔쳐간 장 발장이 경찰에 의해 주교신부 앞으로 끌려왔을 때 그의 도둑질(악)은 감추어주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는 믿음을 지닌 채 “왜 은촛대는 가지고 가지 않았냐?”며 되려 선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바로 은악이양선입니다. 선을 드러나게 했을 때 장 발장은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나와 선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굳게 다짐하고 실천합니다.

누군가 화를 내면서 큰 소리를 낸다면 그 사람의 화를 보는 게 아니라 화를 내는 본심에 담긴 선한 의도, 예컨대 일의 결과를 제대로 잘 이루고 싶어 화가 났던 것 아닌가요? 하는 식으로 그 사람의 선함을 드러나게 해주는 것, 즉 은악이양선하는 것이야말로 자기를 추스르도록 돕는 큰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코칭적 대화도 마찬가지로 선한 의도를 들어주고 지혜를 찾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사례> 선한 의도를 드러내주는 은악이양선 사례 1

부하 :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다가가) “저쪽 부서에서 협조를 안 해주어 일을 더 이상 못하겠어요!”

상사(코치) : “그렇다면 마음이 불편했겠는데?”(공감적 경청)

부하 : “불편한 정도가 아닙니다.”

상사 (코치): “그래? 정말 마음 고생이 여간 큰 게 아닌가 보네.”(인정)

부하 : “예, 알아주시니 다행입니다.”

상사(코치) : “그럼에도 자네가 열과 성을 갖고 잘 버텨주어 그나마 일이 이만큼 진척되고 있다고 생각해”(인정)

부하 : “아직 부족합니다.고 생각합니다.”

상사(코치) : “그래, 그래도 자네 마음은 어떻게 해서라도 협조를 잘 이끌어내고 싶고 일도 잘 마무리 하고 싶다는 것 아니겠어?” (선한 의도를 드러내준 양선)

부하 : “(표정이 밝아지며) 그렇습니다.”

부하직원의 불평을 상사가 불평으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면서 그 안에 담긴 선한 마음을 알아주자 대화가 잘 마무리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악이양선이란 단어와 뜻을 알게 된 후 사람에 대해 선한 면을 보려는 마음을 키우겠다고 생각한 이후 어느 학생과 다음과 같은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사례> 선한 의도를 드러내주는 은악이양선 사례 2

수업을 듣던 4학년 남학생이 개강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취업을 위해 인턴십에 참여해야 된다면서 부득이 수업에 열외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집안 사정도 어려워 도움이 절실해 보였습니다. 동의를 해주면서 학기 종료 전에 과제 제출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가끔씩 독려를 해주었고 과제는 잘 하고 있다는 응답도 들었습니다. 막상 학기말이 되니 과제가 어려워서 해내지 못했다는 말을 전해온 것입니다. 필히 면담을 해야 하니 학교로 오도록 했으나, 오겠다는 시간대가 개인면담하기에 부적절했습니다. 퇴근 후라도 좋으니 내가 학교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여 결국 저녁 7시쯤 만났습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죠.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내가 너를 보자고 한 건 혼내려는 게 아니야. 과제가 어려워 힘들다고 하는데 그 동안 내가 너에게 기여한 게 없으니 너한테 학점을 줄 수 없지 않겠니? 그래서 과제를 하도록 도와주고 싶었어. 그런데 지금 과제물 책자를 보니 거의 다했네! 어떻게 된 거야?”

“솔직히 전화통화하면서 화가 나신 줄 알고 부랴부랴 서둘러 과제를 완성했어요. 이제 다 해결했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잘 했다. 급히 오느라 저녁을 못 먹었겠네?”

이동하면서 또 밥을 기다리며 자연스레 학생과 코칭식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인턴이긴 하지만 월급이 무척 적었고, 그 분야로 진출할 계획도 없었습니다. 단지 당장 아쉬워서 인턴에 응한 것이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공부도 못하고, 경험이 크게 도움도 되지 못하는 상황이란 걸 알고 “공부도 하면서 돈도 버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질문을 꺼낸 후 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다음 학기에 학교 복도 한 편에 위치한 음료수 자판기에 캔을 보충하고 있던 그 학생을 만났습니다. 반가운 얼굴로 90도 각도로 폴더 인사를 하며 공부도 병행하기 위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골랐고 남는 시간을 쪼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지낸다고 말을 내게 전해주었습니다. 명절 때를 비롯해 가끔씩 문자로 인사도 전해오곤 했습니다. 자신에게 전해준 말들 가운데 ‘선생이 제게 기여한 게 없어서 학점을 줄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잊을 수 없어요. 학점을 줄 수 없는 이유로 제 탓을 하실 줄 알았는데 챙겨주시려고 하신 마음이 너무 고맙습니다’고 했다. 나 자신도 ‘선악이양선’을 통해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은 따듯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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