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말, 살아나게 하는 말

[한국강사신문 오정근 칼럼니스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집안에 돈이 쪼달리자 아내가 밀린 외상값을 받아오라고 남편을 채근한다. 구두를 만들며 생계를 꾸려가는 제화공인 남편은 몇 집을 돌아다니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외상값을 줄 수 있냐고 청한다. 다들 살기가 녹녹지 않다는 건 그도 잘 안다. ‘다음에 꼭 주겠다’는 대답에 모진 소리를 못하는 남자는 헛웃음을 삼키며 발길을 옮긴다. 다행이 한 집에서 외상값의 일부라도 주겠다고 하자 그나마 반갑다.

남자는 시린 마음도 달래고 추위를 달래려 술집에 들러 술 한잔으로 목을 적신다. 집으로 향하던 길에 교회 앞 계단에 살색이 하얀 어떤 남자가 외투도 없이 헐벗은 모습으로 앉아서 몸을 움크린 채 벌벌 떨고 있다. 남자는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외투를 벗어 그에게 입혀주며, “갈 곳이 없으면 우리집이라도 갑시다”고 권하며 턱을 위로 들어올리며 어서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낸다.

남편이 외간 남자를 데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자기와 남편이 함께 교대로 입는 외투를 그 남자가 입고 나타나다니 이게 웬일인가? “이 손님이 몹시 배가 고픈 상태이니 저녁 식사를 준비해줘요”하고 남편이 말한다. 기가 막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면서 남편에게 폭풍우 퍼붓듯이 심한 언사를 퍼붓는다. 남편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듯이 한바탕 분풀이를 들을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을 것이다.

아내는 할만큼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그 지점에서 폭풍우는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궁시렁거린다. 밥은 아예 챙겨주지 않을 기색이다. 눈치를 살피며 아내 곁에 다가가서 한마디 말을 하자 아내는 이내 조용해지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자, 만일 당신이 이 상황을 마주한 남편이라면 아내에게 뭐라고 하겠는가? 아내가 자기 생각에 따라주기를 바라는 순간이다. 설득을 할 것인가? 질문을 할 것인가?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문제에 닥치면 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답을 찾기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고 피터 드러커는 말한다. 그는 답을 찾기 전에 좋은 질문을 먼저 찾으라고 권한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난 10년 넘게 코칭을 하면서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들어 내는 경험을 수없이 해봤기 때문이다.

위의 스토리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 일부를 약간 각색한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다가가 이렇게 질문은 한다. “당신 마음 속에는 하느님이 없소?” 이 한마디 질문에 아내 태도가 온순해진 것이다. 아마 아내의 신앙심이 충분하단 걸 알고 있었으리라. 혹은 상황과 맥락에 딱 맞는 질문이었기에 강력한 힘을 발휘했으리라.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대입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렇다. 누구에게나 측은지심(惻隱之心,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 곤경에 빠지거나 사고로 다치거나, 혹은 헐벗거나 굶주린 것을 보면 안타까워한다.

유교에서는 모든 사람은 인의예지라는 4가지 덕(미덕, virtue)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덕이 없는 사람은 없다. 4덕 가운데 인(仁, 사랑)이 나머지 모두를 포괄한다. 인(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측은지심이 발현되는 것을 보고, 우리 본성(本性) 안에 인(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맹자의 설명이다.

사랑인 인(仁)은 어떤 힘이 있을까? 주자(朱子)는 인(仁)을 천지생물지심(天地 生物 之心, 하늘과 땅이 무언가 살리는 마음, 살아나게 하는 마음, 낳는 마음)이라 했다. 천지를 가깝게 보면 엄마와 아빠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낳고, 살리기도, 살아나게도 한다. 그런 마음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들은 사랑을 하며 산다. 사랑으로 대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이 정이 담겨 있다면 그건 정말(情)이다. 내가 하는 말이 사랑의 말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자의 말대로 사람의 기분(氣分)을 살리는지 혹은 기(氣, 기운)를 죽이지는 않는지 돌아보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의 기를 살리는 말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의 언어요, 인(仁)이 작동하는 중이라 하겠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오정근 칼럼니스트는 연세대에서 HRD 석사를 국민대에서 문화학박사를 취득했으며, 전문코치로서 리더십 코칭과 커리어 코칭을 하고 있다. 국민대학교 교양학부와 일반대학원에서 10년째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며, 단국대 경영대학원과 숭실대 교육대학원에서는 코칭과 관련한 과목을 강의을 한 바있다. 인문학 기반의 리더십 강의와 감정철학을 기반으로 통찰력을 키워가는 코칭이 강점이다.

저서로는 2022년 한국코치협회에서 최우수도서상을 수상한 『오정근의 커리어 코칭(북소울, 2022)』과 『떨리는 강사 설레는 강사(학지사, 2014)』(공저) 등이 있다.

출처 : 한국강사신문(https://www.lecture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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